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키 스타디움 (문단 편집) == 구 양키 스타디움(1923~2008) == ||<-2> [[파일:external/content.sportslogos.net/yhwlmw06ev5pfe1xqshf3w1kl.gif|width=70%]] || ||<-2><#132448> {{{#ffffff 뉴욕 양키스}}} || ||<-2><#c4ced4> {{{#132448 구 양키 스타디움}}}[br]{{{#1c2841 (Yankee Stadium)}}} || || 개장 ||<(> 1923년 4월 18일 || || 홈 구단 ||<(> [[뉴욕 양키스]] ([[MLB]]) (1923~2008) [br] [[뉴욕 자이언츠]] ([[내셔널 풋볼 리그|NFL]]) (1956~1973) || || 건설 비용 ||<(> 240만 달러 || || 수용 인원 ||<(> 56,886석 || || 리모델링 ||<(> [[1976년]] [[4월 15일]] || || 마지막 경기 ||<(> [[2008년]] [[9월 21일]] || || 철거 ||<(> [[2010년]] [[5월 13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uffnobodycaresabout.com/Yankee-Stadium-aerial-const.jpg|width=100%]]}}} || || 1923년 개장 당시 양키 스타디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ballparkprints.com/170_1yankeestadium4000_27.jpg|width=100%]]}}} || || 1937년 3월 30일, 증축 중인 양키 스타디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dezsantana.com/p792629531-3.jpg|width=100%]]}}} || || 증축이 완료된 양키 스타디움. || 1923년에 개장한 옛 양키 스타디움은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특수한 콘크리트로 건축되었으며, 야구장으로서는 보기 드문 7만여 명의 관중을 수용했던 구장이다.[* 그 이상을 수용하던 구장이 있긴 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뉴욕]] 시절 홈구장으로 썼던 폴로 그라운드는 무려 10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크고 아름다운]] 구장이었다.] 1970년대에 리모델링을 거쳐[* 정확히는 1976년초에 리모델링을 하여 재개장을 했는데 기껏 리모델링 해놓고 그해 말에 크리스 챔블리스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 끝내기 홈런을 날린후 관중들이 난입하면서 일부가 훼손되어 다시 보수를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5만 명대로 관중 수용을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큰 구장 중 하나였다. 외야 펜스는 [[베이브 루스]]의 홈런 생산을 위해 우측 펜스가 좌측 펜스보다 좀 짧다. 그렇다고 좌측 펜스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다. 반면 외야는 꽤 넓은 편이었는데, 양키스에서 발 빠른 중견수를 선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뉴 양키 스타디움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우측 펜스가 짧은 덕분에, [[뉴욕 양키스]]를 빛낸 타자들 중에는 좌타자가 많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개장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루 게릭]]은 1923년 양키 스타디움 개장 경기에 투수로 등판하여 17K를 기록했다.]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돈 매팅리]] 등. [[미키 맨틀]]도 스위치 히터이긴 했지만 우타석 타율(.329)이 좌타석 타율(.281)보다 좋았음에도 좌타석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양키 스타디움의 짧은 우측 펜스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이라는 애칭이 있는데, 이는 [[베이브 루스]]의 영입 후 [[뉴욕 양키스]]가 [[뉴욕]]의 2인자, 3인자 신세에서 벗어나 뉴욕의 1인자이자 전 미국의 인기 팀이으로 발돋움했으며, 또한 그의 스타성과 그의 홈런으로 인해 몰려든 관중 수입으로 양키 스타디움을 지었다고 하여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위치는 뉴욕의 대표적인 빈민가 브롱스(Bronx). 본래 브롱스는 구 양키 스타디움이 지어질 때만 해도 살기좋은 백인 부촌이었는데, 1948년 백인 거주구역의 집을 흑인에게 못 팔게 하는 인종차별행위가 금지되고 이런저런 사유로 흑인들이 점점 몰려들며 집값은 떨어지고, 백인들은 흑인을 피해 교외로 이사가며 지금은 치안 나쁘기로는 할렘보다도 더한 대표적인 뉴욕의 흑인 빈민가가 되었다. 하지만 본래 백인 부촌이었다가 빈민가 한복판이 된 이 절묘한 양키 스타디움의 위치가 양키스가 뉴욕 제1팀이 되는 것에 일조했는데, 본래 위치가 위치인만큼 백인 위주의 팬덤을 이룬 팀이었는데 흑인 빈민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흑인 팬까지 흡수해 그야말로 흑백을 가리지 않고 응원하는 인종대통합 팀이 된 것.[* 메츠 동네인 퀸즈도 빈민가이긴 한데 여긴 히스패닉 중심으로 아시안도 좀 섞인 다인종 빈민가라서, 히스패닉과 아시안 계열이 주 팬층인데 아무래도 흑인, 백인에 비해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시카고의 경우 백인들의 팀 컵스와 흑인의 팀 화이트삭스로 팬덤이 나눠진 경향이 있는데, 양키 스타디움의 절묘한 위치가 양키스와 메츠가 그런 구도로 나뉘지 못하게 막아준 것. 물론 뉴욕은 도시의 경제력이 무시무시하다보니 양키스가 절대다수를 먹어도 메츠도 먹고살만한 팀이긴 하다.] 게다가 그렇게 된 덕분(?)에 많은 흑인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정체성, 브롱스 출신임을 나타내기 위해 메츠가 아닌 뉴욕 양키스의 모자를 썼고 그 덕분에 양키스는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NY무늬는 아는 야구를 넘어 하나의 문화심벌이 되다시피 했으니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oylepartners.com/HeritageField10.jpg|width=100%]]}}} || 철거된 자리에는 헤리티지 필드(Heritage Field)라는 간이 야구장이 들어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dn.vox-cdn.com/AP_70183906109.0.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johngzimmerman.com/Giants-Yankee-Stadium-.jpg|width=100%]]}}} || ||<-2> [[내셔널 풋볼 리그|NFL]] 소속 [[뉴욕 자이언츠]]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 그 외에도 수많은 마이너 풋볼팀들이 잠시 거쳐가기도한 역사있는 구장이다. 그 팀들의 이름은 대부분이 뉴욕 양키스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gyg3KM9pXA,width=100%)]}}} || 예전에는 미닛메이드 파크의 폴대를 연상케 하는 기념탑이 필드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